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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면 다대리
  • 영조(英祖) 45年(1769) 방리(坊里) 개편으로 고다대포방(古多大浦坊)이라 하였는데 고종(高宗) 26年(1889) 큰 다대를 다대리(多大里)로 작은 다대를 다포리(多浦里)로 분리하여 1915年 6月 1日 법정리(法定里)가 되었으며 오늘의 행정리(行政里)로 있다. 고다대포(古多大浦)는 선조(宣祖) 25年(1592) 임진왜란(壬辰倭亂)때 부산(釜山)의 다대포(多大浦)가 있었음을 옛날의 다대포(多大浦)에 수군첨사(水軍僉사)를 두었다가 부산(부산)으로 옮겼다는 뜻이며 5月 7日 옥포대첩(玉浦大捷)의 전야(前夜) 이순신(李舜臣) 함대(艦隊)가 머물었다는 송미포(松未浦)가 이곳으로 진해(鎭海)의 해군통제부(海軍統制府) 박물관장(博物館長) 조성도(趙成都)가 1990年에 인증하였다.
남부면 다대(多大)마을

영조(英祖) 45年(1769) 방리(坊里) 개편으로 고다대포방(古多大浦坊)이라 하였는데 옛 부터 현재의 「다대마을」을 「큰다대」라고 하였고 다포마을을 「작은다대」라 불리워져 왔으며 고종(高宗) 26年(1889) 「큰 다대」를 다대리(多大里)로, 「작은 다대」를 다포리(多浦里)로 분리하여 1915年 6月 1日 법정리(法定里)가 되었다. 「작은다대」는 다포리에 속하게 되어 「다포마을」로 불리우게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다대리에 있는 「큰다대」를 「다대마을」 불리우게 되었다

가라산 봉수대(加羅山 烽遂台)

거제도의 수봉 높이 585m 가라산에 있는 봉수대는 대한해협을 지키는 전초기지로 동에는 옥녀봉(玉女峯), 북으로 계룡산(鷄龍山), 서로는 통영(統營)의 미륵산(彌勒山) 봉수대와 연락하던 곳이며 높이 2.5m 직경 40m 석축위의 큰 봉수대를 지방기념물(地方紀念物) 第147號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가매자리봉

다대의 동쪽 한목쪽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산이다.

갈라진 바위

가라산 밑에 갈라진 바위가 있다.

긱대넘개

가라산 밑 동쪽에 1915년 세부측량때 측량의 깃대를 세웠던 산으로 높이 305.2m넘어 다대만에 접하는 개이다.

다대산성(多大山城)

가라산(加羅山) 밑 중허리에 경덕왕(景德王) 16年(757) 거제삼속현중(巨濟三屬縣中) 송변현(松邊縣)의 진성(鎭城)으로 쌓았다하며 둘레 395m 높이 3.3m로 원종(元宗) 12年(1271) 왜구(倭寇) 때문에 거창현(居昌縣)으로 피난가자 부산(釜山) 다대포(多大浦)로 옮기고 이곳을 고다대포(古多大浦)라 하였다.

다대(多大)재

다대에서 학동으로 넘어가는 큰 고갯길이다.

다대저수지(多大貯水池)

가라산 남동쪽 다대들의 저수지이다.

망골

가라산 봉수대에서 앞바다의 망을 보았으니 그 밑을 망골이라 한다.

먹어나 구망등

가라산 아래등성이에서 동쪽의 해 뜨는 모습을 바라보던 등성이다.

벼락바위

다대재의 동쪽에 옛날 벼락을 맞았다는 바위가 있다.

송미포(松未浦)

선조(宣祖) 25年(1592) 5月 7日 옥포대첩(玉浦大捷)의 전날 통영(統營)의 당포(唐浦)에서 이순신(李舜臣)과 원균수사(元均水使)가 만나 해전(海戰)을 숙의하고 천성 가덕도(天城 加德島)로 항진하다 날이 저물어 머물었다는 송미포(松未浦)를 장목면(長木面) 송진포(松眞浦)라는 설이 있으나 해류상(海流上) 불합리하고 송진(松眞)은 참솔인 적송(赤松)을 말하고 송미(松未)는 참솔아닌 흑송(黑松) 또는 해송(海松)으로 1990年 옥포대첩(玉浦大捷)에 진해통제부(鎭海統制府) 박물관장(博物館長) 조성도(趙成都)가 이곳 다대포(多大浦)의 옛 이름이 송변현(松邊縣)의 송미포(松未浦)임을 해도(海圖)와 함께 인증하였다.

시리미들

다대 뒷산 시리미봉 밑에 있는 들이다.

아래먹어난 구멍

가라산 밑에 구멍이 있는 바위가 있다.

안장걸이 바위

다대산성 밑 망골에 말의 안장 모양의 바위가 있다.

애바위

가래봉 봉수대 밑에 있는 바위다.

영북산

가라산 밑 한목쪽으로 가매자리봉에 있는 산의 높이 305.2m에 삼각점(三角点)이 있다.

윗대밭골

망골위에 큰 동백골 그 위에 있는 대나무가 있는 골짜기이다.

조개발넘개

당메 왼쪽에 있는 바닷가이다.

조금배골

다대재 밑에 옛날 조공의 세곡을 모으던 곳이라 한다.

큰동백고랑

망골 위에 있는 골짜기에 흐르는 계곡이다.

해미당재

다대에서 가라산 밑으로 골짜기 따라 탑포로 넘어가는 길고 먼 재는 아홉구비를 지나야 하는 첫번째 구비를 해미당재라 한다.

다포리(多浦里)

영조(英祖) 45年(1769) 방리(坊里) 개편때에 고다대포방(古多大浦坊)에 속하는 작은 다대라 하였는데 고종 (高宗) 26年(1889) 다포리(多浦里)로 분리되어 1915年 6月 1日 법정리(法定里)가 되었으며 1961年 10月 1日 행정리(行政里)가 되었고 1969年 여차(汝次)마을이 분리되어 다포(多浦)와 여차(汝次)의 행정리(行政里)로 되었다.

다포(多浦)마을

본래 작은 다대라 하였는데 다대만(多大灣)의 서쪽에 위치하고 안가의 땅끝이 뾰족하게 튀어나와 호수같은 또 안개가 형성되어 풍랑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니 다포(多浦)라 하였다.

여차(汝次)마을

작은 다대의 등넘어 남쪽에 있고 앞바다에 작은 대소병대도(大小竝대島)가 8개나 있음으로 이 섬들을 바라보고 지키는 곳이라 하여 여차(汝次)라 하였다.

까마귀개

여차마을의 서남쪽에 까마귀 형상의 산이 있어 까마귀개 또는 오포(烏浦)라 하는데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

다대고개

다포에서 저구리로 넘어가는 작은고개이다.

다포배양장(多浦培養場)

다포마을 남쪽편에 있는 수산진흥원(水産振興院) 거제종묘(巨濟種苗) 배양장(培養場)에서 광어, 넙치, 전족, 도미등 해마다 100만 마리를 배양하여 거제도 해역에 방류하고 있다.

다포도(多浦島)

여차 동쪽 천장산(天長山) 밑 땅끝 바다에 다포도(多浦島) 8,430㎡와 소다포도(小多浦島) 1,581㎡가 나란히 있다.

대소병대도(大小竝台島)

여차 서남쪽 까마귀개 앞에 소병대도(小竝台島) 3개 면적 26,480㎡와 그 남쪽 대병대도(大竝대島) 5개 면적 56,430㎡의 무인도가 부용같이 점점이 모여 한려해상(閑麗海上) 국립공원(國立公園)의 관광낙원을 이룩하여 관광유람선의 코스이며, 미역의 원산지 이기도 하고 뽈락과 감성돔의 낚시터이다.

목넘어골

다포 동북쪽 다대고개 밑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여차해수욕장(汝次海水浴場)

학동(鶴洞)의 몽동해수욕장보다 규모는 작지만 바닷물이 따뜻하고 맑아 몽동이 깨끗하고 아름다와 많은 피서객이 찾아든다.

천장산성(天長山城)

광무(廣武) 8年(1904) 노일전쟁(露日戰爭)때 일본군(日本軍)이 포대(砲台)를 설치 하였던 왜성터가 있으며 높이 275m의 봉우리에는 1914年 5月 1日 지적(地籍)의 세부측량(細部測量)을 시작할때 일본(日本)의 대마도(對馬島)에서 32해리(海里) 60km를 삼각점(三角点)으로 측량(測量)하여 경상남도(慶尙南道) 第1號를 매설하여 우리나라 지적도(地籍圖)의 시발점이 되었다.

천장산 신단(天長山 神壇)

우리나라 최동남단에 위치하여 천장산신(天長山神)의 제단(祭壇)을 쌓고 천신제(天神祭)를 올렸는데 일본군의 포대설치로 마을에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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